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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에 해당하는 글(1)
2008/11/03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1,2 /현각 (8)


2008/11/03 00:06 2008/11/03 00:06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1,2 /현각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던가. 그때의 나는 '삶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질문들에 천착하고 있었다. 당시 활동하던 PC통신 동호회에서 그런 의문들을 토론하며 나름대로의 지식을 쌓아나갔다. 그 때 읽었던 책이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이다. 그는 인도의 성자로, 깨달음을 얻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그 책은 문답 형식으로 진리를 전해주고 있었다. 우리 집안은 대체로 불교에 귀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불교를 접한 나에게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은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인식하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다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물음, '그런데 이렇게 묻고 있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가 결국 불교의 수행방법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양사상은 이처럼 서로 통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르침에 의존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는 방법은 과학에 푹 빠져있던 나의 합리적 사고에 잘 맞았다. 누구도 무엇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진리는 네 안에 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난 것 같다.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책은 1999년에 출판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아마 그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을 쓴 현각스님은 미국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한 후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했다. 현각스님은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며 진리를 찾았지만 '하느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신다면서 왜 어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팔이나 다리가 없을까'와 같은 의문들에 대해 누구로부터도 납득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해 답답함을 느낀다. 진리에 대한 열망이 그를 명문대에서의 학문의 길로 인도했지만, 결국 그가 답을 찾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스님으로부터였다.

이 책은 그의 출가 전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도 대단하다 말하는 예일과 하버드에서 학위를 했지만, 상아탑에서 진리를 찾지 못하고 결국 구도의 길로 들어선 한 벽안의 스님의 인생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예일이나 하버드 학위 같은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진리에 대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는 한 인간의 삶의 여정이다.

그와 같은 진리에 대한 열망과 철학적 사유들이 나를 물리학으로 인도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진리를 찾고 싶어 물리학을 공부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때론 진리가 여기에 있구나, 하고 느낄 때도 있었다. 어디까지 가면 거기에 닿을 수 있을까? 박사학위를 하고, 긴 박사후 과정을 거쳐 전문 연구자가 되어도 어쩌면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인가? 물리학에서 나는 독특한 유물론적 세계관 배웠고, 가정과 선입견, 편견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를 익혔다. 그런 나에게, 불교식의 '끊임없는 질문에 의한 수행법'은 쉽게 다가왔고, 과학과 진리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물리학에서의 진리탐구란 결국 자연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리가 보고 있는 자연의 이면에는 어떤 법칙이 숨겨져 있는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이 다루어야 하는 영역이 인간의 인지 한계를 벗어나 극미, 혹은 극대의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양자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다룬다. 우리는 전자를 본 적이 없다. 전자라는 개념을 가정했을 때, 그에 따른 효과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와 같은 인식론적 문제가 나타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와 같은 개념들을 인식하고, 추상화하고, 생각하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파란 눈의 이 스님에게서 내 모습의 일부를 본다. 지금은 이 책이 절판되어 아쉬울 뿐이다. 현각스님은 자신의 스승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엮은 책 <선의 나침반(The Compass of Zen)>을 영어판에서 한글로 번역해서 한국에서 출판하기 위해 기초 작업으로 이 책 <만행>을 썼다고 하니까, 관심있는 분은 <선의 나침반>을 대신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결국 현각스님이 출가한 이유를 담고 있는 책이니까.



*인상 깊은 구절: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1>

- 교수님들은 한결같이 진리를 설파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수업시간마다 정의, 올바른 삶, 자비, 봉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면 그들의 고민이란 누가 다음 총장이 될 것인지, 교과목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 하는 것들이 전부였다. 그들이 진리를 설파하는 그 순간에도 바로 학교 담 너머 이웃들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활로 고통받고 있었지만 교수님들은 주말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멋진 차를 타고 도시를 서둘러 벗어났다. 정부 관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등 하나같이 내로라 하는 대학을 나왔으며 전직 교수이기도 했던 그들이 펴는 정책이란 또 무엇인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 힘겹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 나는 그런 교수나 정부 관료들의 삶이 비도덕적이라거나 나쁘다고 하는 가치판단을 넘어 결국 내가 교실에서 그들에게 배우는 지식이란 것이 뭔가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시달렸다. /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철학을 공부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노벨상도 타고 훌륭한 학자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우리에게 안정된 직업을 가져다줄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삶은 가져다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pp.95-96)

- 보고 먹고 즐길 거리가 많은 뉴욕의 한복판에서 하버드, 프린스턴, 버클리 등 명문대학을 나온 돈 많은 수재들과 함께 거의 매일 밤을 이렇게 놀고 마시지만 삶이란 그런 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내 친구들의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와 그들의 가족들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그들은 사회의 최상층부 진입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삶은 무엇인가. 오늘은 술집, 내일은 당구장, 카페, 디스코텍,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배우자,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직장…… 온통 그것들뿐이었다. 아무도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속으로는 수행자의 삶을 꿈꾼다고 하면서도 나를 꼬드기는 세상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갔다. /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결국 그런 삶은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삶 아닌가. 평생 쳇바퀴를 돌 듯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동물원 우리란 무엇인가? 내가 만든 것 아닌가. 그래 놓고 빠져나올 수 없다고?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갇힌 삶을 즐기기 때문이 아닐까. / 나는 택시에서 내려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도 계속 이런 생각을 했다. / '이런 삶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게 뭐지? 모든 사람들이 마치 꿈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 뉴욕 시의 마천루 같은 꿈. 하지만 그건 꿈 아닌가. 꿈꾸는 사람은 결코 서로를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어.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들만의 꿈을 갖고 그 세계에 갇혀 있는 것 아닌가. 어떤 사람은 변호사의 꿈, 어떤 사람은 은행원의 꿈, 어떤 사람은 좋은 여자친구를 갖고 싶다는 꿈, 어떤 사람은 훌륭한 아버지의 꿈, 그러면 내 꿈은? 종교를 갖지 않는 철학자가 되겠다는 꿈? 더이상 책은 필요없어. 뭔가 행동이 필요해.' (pp.140-141)

- 무위란 물론 '행위가 없음'(non-action)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무위도식하거나 빈둥거린다는 뜻이 아니다. 무위란 보통 인간 사이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 자기 중심적인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 부자연스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 자발적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無爲之爲) 즉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동방식, 이런 마음가짐, 이런 초월적 자유를 가진 자유인이 하는 일은 참된 일이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만큼 자유인인가? (p.159)

- 내가 싫다, 좋다는 가치 판단을 놓아버리면 나는 그들과 조화를 이루어 잘 살아갈 수 있지만 내 견해, 내 상황에 집착하면 내 주변의 조건과 상황은 금세 나빠졌다.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수행하고 어디서나 마주치는 그들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나의 삶은 금세 최악의 상황으로 바뀌었다. / 자기 견해와 상황을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는 우리 몫이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버리지 않으면 스트레스와 고통이 나타났다. 스님은 스님대로 신도는 신도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각자의 상황을 고집하면 싸움이 일어났다. / 그리하여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미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자기가 처한 모든 생각과 견해를 버린다면 세계 평화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우리는 심지어 그 작은 공간에서 세계 평화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테스트 한다고 농담했을 정도였다. / 만약 내 조건과 상황 견해를 버리면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젠센터가 평화로워진다. 그리고 그걸 안 이상 이미 세계 평화는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p.175)

- "그럼, 내가 먼저 묻겠어요. 당신은 하버드 대학원에 다니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니 어떤 질문이든 대답할 수 있겠지요. 우선 아주 쉬운 질문 하나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중국의 조주선사에게 한 제자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조주선사께서는 '없다'라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제가 묻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왼쪽 팔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시계에는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 나는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당혹스러웠다. 할말을 잃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오갔지만 무슨 말을 던져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 그러자 잠시 후 그는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은 하버드에 다니는 수재인데 대답을 못하는군요. 아이들도 답할 수 있는 질문인데 말이에요. 당신 머릿속엔 쓸데없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군요. 하하하." / 그의 방을 물러나와 다시 선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참선수행을 계속했다. 그때는 1월 한겨울이었는데도 내 몸에선 식은땀이 흘렀고 심장은 쿵쿵거렸다. 내가 그렇게 왜소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런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못하다니……. (p.179)

- 정치나 종교 그 자체로는 이 세상을 도울 수 없습니다. 지식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노력하면 뭔가 겉모습을 약간 변형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합니다. (p.184)

- 옛날 학자들은 말과 행동이 하나였습니다. 요즘 학자들은 진리와 정의, 평화, 도덕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고 이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정치가들, 종교인들, 사회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모두 평화를 얘기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평화를 하겠다는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이 세계를 돕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잘 이해가 안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났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을 붙잡고 '오직 모를 뿐……' 하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집착이 사라집니다. 생각 이전의 본성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됩니다. 그것이 조화이고 평화입니다. (pp.188-189)

-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 눈을 감기 바로 직전, 죽는 순간에 아무리 1천 개의 박사 학위가 있어도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p.214)

- "탱큐, 탱큐.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 자신 안에 이미 수백만 달러가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모를 뿐입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p.237)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2>

- 교수님은 나에게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의 얼굴에는 얼핏 지난 생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게 엿보였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 것이다. 저토록 모든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 노교수가, 이제 모든 것을 이뤄냈으리라는 충족감에 가득 차 있어야 할 나이에 아직도 뭔가 아쉬움에 한쪽 가슴이 뻥 뚫린 듯한 허전함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 앞에서 마음이 아팠다. (p.17-18)

- 첫 주 동안 나는 거의 매일 눈물을 흘렸다. 쉼없이 절을 하면서도 참선하고 앉아 있으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밤에는 어둠 속에서 뒤척였다. 아침이면 베개가 마치 물에 젖은 듯했던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너무 고통스러워 다 때려치우자 결심하기도 했다. / '그래 지금 그만둬도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1주일 정도 했으니 할 만큼 한 거야. 이제 나는 보통사람들처럼 살면 돼. 여자친구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고 안정된 직장을 찾아 일하면서 주말이나 휴가 때 젠센터에서 틈틈이 수행을 하면 될 거야. 부모님들은 돌아온 아들을 보며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를 반겨하실까. 그들은 나를 여전히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고 나는 그들 어깨에 지워 드린 큰 짐을 내려놓게 하는 효자 노릇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이 모든 의심과 고통 속에서도 수행을 멈추지는 않았다. 거의 2주가 흐르자 내 마음이 서서히 맑아지고 잡생각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침안개가 햇살에 걷히는 것처럼 모든 의심과 고통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 앞에 펼쳐진 길이 보다 명확하게 보였다. / '그래 출가를 하자.' / 용맹정진을 마치고 보스턴으로 돌아와 나는 여자친구를 만났다. 그리고는 내 결심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그녀는 내가 기도를 하는 동안 결국은 자기 곁으로 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는데 내가 스님이 되겠다는 결심을 더 굳히고 오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 나는 그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액크 교수에게 보고서를 내야 했기 때문에 수행을 끝낸 뒤 바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나의 미래를 얘기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내가 결국엔 스님이 되는 것으로 결론 지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녀와 이것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상 출가에 대해 다른 사람하고 얘기해봐야 나를 더 약하게 하고 서로에게 실망만 더 안겨다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일에 더욱 집중했고 적절한 시기가 되면 적절한 인연이 나에게 다가올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pp.26-27)

- 저 얼굴과 몸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하버드나 예일에서 만난 그 어떤 천재적인 철학자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학자들의 얼굴은 노소를 막론하고 찡그려져 있었으며 어두웠다. 그들은 하루종일 우리에게 진리와 빛을 가르쳤지만 정작 그들은 지옥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큰스님의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저 얼굴, 저 눈, 저 분위기로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p.29)

- 나는 여자친구 얘기를 했다. 그녀는 큰스님도 잘 아는 제자였다. 나는 큰스님께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출가를 할 수 있을지 여쭈었다. / 그러자 큰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상태에선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저 수행만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올 겁니다. 서로 많은 말을 해봐야 도움이 안 됩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어떤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알겠지요?" / 나는 평온해진 마음으로 대답했다. / "예, 알겠습니다, 큰스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 방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소를 머금고 계시던 큰스님은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말씀하셨다. / "스님이 되는 길은 좀더 빠른 길을 간다는 겁니다.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 역시 깨달을 수 있지요. 하지만 어렵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수행을 하면서도 마음속은 엄청나게 싸움을 해야 합니다. 아내나 남편을 갖고 아이들을 갖게 되면 아무래도 돈도 벌어야 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아지지요. 그리고 가족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되고요. 하지만 당신은 이제 빠른 길로 들어섰습니다.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하하하하." (p.31)

- "스님이 되는 것에 단 1퍼센트라도 주저함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이 1퍼센트가 나중에 당신을 죽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이 1퍼센트는 나머지 99퍼센트보다 강합니다. 1퍼센트는 점점 자라 당신의 마음을 완전히 주무를 것입니다. 그러면 포기를 하고 다시 돌아갈 겁니다. 99퍼센트가 명확해져 완전히 100퍼센트가 될 때 나를 다시 찾아오세요. 오케이?" (pp.36-38)

- 인간의 길 / 빈손으로 왔다가 / 빈손으로 가는 게 / 인생이다. / 태어났을 때,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 죽을 때, 어디로 가는가? / 삶은 구름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 그러나 본래 구름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 삶과 죽음, 우리 인생의 오고 감 / 모두 이와 같다. / 그러나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맑은 게 하나 있다. /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순수하고 맑은 게 있다. / 그렇다면 맑고 깨끗한 것이 무엇인가? (숭산 큰스님 말씀, p.60)

- 스님이 되기 전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좇는 삶이었다. 명예를 좇고, 지위를 좇고, 욕망을 좇고, 사랑을 좇고, 돈을 좇고, 직장상사를 좇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생각을 좇고, 친구들의 뜻을 좇고, 기회를 좇고…… 끝없이 좇고 좇고 또 좇는 삶이었다. /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잠을 자면서 꿈을 꿀 때조차 말이다. /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다. 머리가 좋고 재능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이런 상황에 내몰리기 쉽다. 그게 세상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다를 게 없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잠자리에서조차 무언가를 얻으려고 아등바등하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설사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순간이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p.73)

- 하버드와 예일에서 공부할 때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님들로부터 배웠다.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의 꿈이란 바로 그런 교수님들처럼 사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사회를 움직이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삶이란 피곤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스물 네 시간 온통 일, 일, 일, 일에 휩싸였고 항상 무언가를 좇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내놓을까봐 두려워했고 그들의 질투 때문에 괴로워했다. 혹 실수라도 할까봐 두려워했으며 자기 잘못이 드러나면 자존심의 상처 때문에 견딜 수 없어했다. (p.73)

- 대부분 사람들에게 마음과 행동은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내가 처한 현실과 내가 원하는 마음은 분리되어 있다. 그것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 종종 우리는 이 순간을 살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산다. 지금 이 순간을 잊어버리고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흥분과 기대로 산다. 밥을 먹으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생각은 길들지 않은 야생마처럼 이쪽 저쪽으로 돌아다닌다. 단 한순간도 만족하는 법이 없다. / 스님의 삶이란 매순간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이다. 바로 이순간 있는 그대로 완벽한 삶이다. 진정한 자유인의 삶이다. / 나는 집도 없고 옷도 없고 의료보험도 없고 차도 없다. 하지만 행복하다. 매일매일 자유롭고 하루하루 새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 뺨을 스치는 바람, 귓가에 들려오는 새소리, 코에 닿는 향냄새, 혀로 느끼는 차의 맛, 바로 이 순간의 삶이 진리인 삶이다. (p.74-75)

- "연구를 열심히 해서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삶도 값진 것 아니었겠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마티유는 이렇게 대답했다. / "운이 좋게도 저는 이 세상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사람들과 교류했습니다. 위대한 음악가들도 사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만나면서 '저것이 내가 열망하는 것인가?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은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비록 그런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발휘하는 천재성을 빼면 가장 소박한 인간적인 완성, 예를 들자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든가, 선량함 혹은 진실함이 동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러다 인도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티벳의 위대한 스승 칸규르 린포체를 만났습니다. 단 3주일 동안 그를 만났을 뿐인데 저에겐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은 그저 선량함이 흐르는 70세의 노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서 저는 소위 '명상'이라는 것을 하는 듯한, 다시 말해 그분의 면전에서 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바로 그분의 인격, 그분의 존재 자체였습니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깊이, 힘, 고요함이 제 정신을 열었던 것입니다." (p.142)

-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아놀드 토인비 경은 죽기 2,3년 전에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기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이 나왔다. / "미래 역사가들이 만약 20세기 역사를 쓴다면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었다고 쓸 것 같습니까?" / 그들은 토인비의 입에서 제2차 세계대전, 원자폭탄 발명, 히틀러의 등장, 공산주의의 확산, 비행기의 발명, 정보통신의 비약적인 발전 등이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답이 튀어나왔다. / "가장 중요한 사건은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 서양에 전파된 것이지요." /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토인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pp.144-145)

- "가장 하찮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 바로 나에게 하는 행동이다." /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p.176)

-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장 프랑수와 르벨은 "과학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에 닿는 이야기는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pp.179-180)

- 우리의 인식 체계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컴퓨터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식 또한 '무언가'가 조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과학이라는 학문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 '무언가'가 우리의 인식을 조종하고 과학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 바로 이 '무언가'를 찾는 것이 선(禪)입니다. (p.183)

- 선이란 특별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 생각, 행동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만히 보면 마음과 몸이 따로 놉니다. 먹을 때, 잘 때, 걸을 때 우리 몸은 먹고 자고 걸을지 몰라도 마음은 끊임없이 따로 움직입니다. 참선수행을 하면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미 세계 평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났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을 붙잡고 '오직 모를 뿐……' 하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집착이 사라집니다. 생각 이전의 본성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됩니다. 그것이 조화이고 평화입니다. (pp. 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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