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일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일은 무엇을 하며 보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되겠다거나, 누군가를 왜 만나야 하는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한동안 찾아뵙지 못한 외가에 다녀오자고 마음먹었다. 금요일 저녁엔 모임이 있기 때문에 그 전엔 돌아와야 한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자정이 넘어서 짐을 꾸렸다. 너무나도 다시 메어보고 싶었던 사랑스런 배낭을 꺼냈다. 지난 겨울 내내 타국에서의 긴 여정을 나와 함께한 녀석이다.
조금 눈을 붙이고 화요일 아침에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외가는 풍기. 기차여행은 즐겁다. 게다가 버스나 기차를 타면 기본 10시간이었던 지난 겨울 여행의 경험 때문인지 3시간 반이 되지 않는 이동거리는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나면 전 세계의 어느 기차여행이든 짧게 느껴지지 않을까.
외가에 도착해서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외사촌 동생과 짧은 조우를 한 뒤 잠시 부석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외가 친척들은 부석사에 다니신다. 상당히 유명한 절인데,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676년)하셨고, 무량수전은 배흘림 양식 때문에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듯.
 절의 초입, 천왕문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세계  무량수전 구석구석 한참을 돌아보았다. 어릴 적에 부석사에 종종 가곤 했었는데, 내 기억 속의 부석사는 훨씬 컸던 것 같다. 절터도 그렇고, 무량수전도, 무량수전의 불상도 훨씬 컸던 것만 같은데.
한참을 돌아보다 이모께 전화를 받았다. 연락해줄테니 올라간 김에 스님과 차 한잔 하고 오라고. 덕분에 도선스님을 뵙고, 차를 얻어 마시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었고, 즐거운 대화였다. 지혜를 나누어 주실 수 있는 분과의 대화는 즐겁다. 조금은 답답함이 풀리곤 한다. 스님은 전자공학을 전공하셨단다. 나는 내 전공 이야기와 고민 같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스님의 한마디.
"올라온 김에 며칠 머물다 가지? 여기 공기도 좋고, 한동안 있어도 좋아"
"예? 예..."
그렇게 간단히 나의 체류는 정해져 버리고, 법당에 맨발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이유로 스님께서 양말도 몇 켤레 주시고(..)
 부석사 경내 그날 저녁부터 저녁예불에 참가했다. 한국의 절에서 머문 경험은 어릴 적을 제외하고는 없다. 네팔과 인도의 한국절에서 머문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걸까.
절에서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3시쯤에 일어나 3시반부터 시작하는 아침예불에 참석한다. 아침공양도 6시쯤 했던 것 같고.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었는데 행자님께서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하셔서 계단을 좀 쓸다가 잔디밭에 난 토끼풀을 뽑았다. 일을 하면서 행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행자님도 물리학을 전공하셨다고 해서 반가웠다. 나중에 도선스님께 들어보니 포항공대를 졸업하셨다고 한다. 삼성에서 과장급까지 올라가셨다가 늦게 출가하셨다는 이야기를 이모에게 들었다.
어쨌든, 물리 이야기도 하고, 불교 이야기도 하면서 토끼풀을 뽑았다. 귀신 이야기부터, 믿음과 진실, 그리고 인과론 같은 주제도 이야기했다.
점심공양을 하고나서는 도선스님 볼일 보러 가시는 차에 같이 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기회를 놓지지 않고 또다시 물었다.
"스님들은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 사는 거잖아요"
"그렇지. 부처님이 되려고 하는 거지"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왜 사는 거예요?"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지. 보통 사람들도 스님이랑 똑같아.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 사는 거지"
불교의 윤회설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본질적으로 고통인 삶을 계속 반복한다.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 부처가 되면, 그러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이 해탈이다. 모든 중생은 생을 반복하면서 좋은 업을 쌓고, 궁극적으로 부처가 되어야 그러한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
종교란 이렇게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답을 주는 것일까? 다른 종교에서는 어떤 답변을 해줄지 궁금하다.
 부석사  식당 뒷편 짧은 외출에서 돌아와서, 늦은 오후엔 행자님과 같이 오전과 마찬가지로 토끼풀을 뽑았다. 저녁공양 후에는 스님과 차를 마시기로 했는데, 스님이 볼일 때문에 나가셔서 뵙지 못하고 전화통화만 했다. 오늘 저녁예불 끝나고 내려가게 되어서 가기 전에 한번 뵈려고 했는데, "서울 가서 일 처리 다 하고 다음엔 길게 올라와"라고 하시더라.
저녁예불을 드리고, 나를 데리러 와주신 이모 내외분과 만나 이모댁으로 향했다. 이모댁에서 1박. 그리고 외가에 다시 돌아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뵙고 상경했다.
다음엔 공부할 것을 싸들고 부석사에 한번 올라가봐야지. 공부하기에 좋을 것 같다. 풀을 뽑거나 청소를 하거나 하는 일들이 마치 군대에서 늘상 있는 작업들 같은 느낌. 겨울에 눈 치우는 것도 비슷한 것 같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왜 살아요?"라고 물어도 어색하지 않은 곳은 그다지 흔치 않은 느낌. 아무래도 인연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