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말, 코스피 지수가 2000을 돌파할 무렵, 나는 거치식 펀드에 돈을 넣었다. 당시에는 별 고민 없이 베트남에 투자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손해를 봐도 좋으니 베트남 펀드에 돈을 넣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위험하지 않느냐는 의견 때문에 원래 투자하려고 했던 금액의 반만 넣고, 나머지 반은 삼성그룹주에 투자하는 국내 펀드에 넣었다.
그래서 지금 세계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요즘, 결과는? 거의 원금의 반토막이 났는데, 그나마 삼성그룹주가 덜 손해봤더라. 다행하게도 시험삼아 펀드에 돈을 넣었던 거라 그다지 많이 넣지 않았고, 나머지 돈을 정기예금 등에 넣은 것이 이런 주가 폭락 시기에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 투자로 돈을 버는 원리는 간단하다. 쌀 때(저점) 사서 비쌀 때(고점) 파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간단한 원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돈을 잃는다. 시장이라는 것이 미약한 개인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시장을 움직이는 정보를 미리 알기도 힘들다.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것은 합법적 도박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잘 알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할 거라면, 차라리 그 노력으로 스스로 사업을 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경제사정이 어렵다고는 해도, 산골에서 세상과 떨어져서 살고 있다면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다. 경제가 어렵든 말든, 일단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요즘 같은 시기일 수록 '놓아 버리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어려운 경제사정은 분명히 인재(人災)다. 자연재해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인데, 그런 일 때문에 사람들 스스로가 고통받고 힘들어 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답답하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생산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은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게 되고, 그것이 쌓여서 잉여자산이 되면 거기에서 집착이 생겨나고 스트레스가 생겨난다.
한편, 사회의 인식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무능력하다'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물론 그런 잣대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상의 가치란 없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이념에 반기를 드는 데에는 상당한 딜레마가 있다. 그것은 마치 이런 것이다: 학벌이 좋지 않은 사람이 학벌 사회에 반기를 들면, 본인이 좋은 학벌을 소유하지 못해서라고 여긴다. 반면, 학벌이 좋은 사람이 학벌 사회에 반기를 들면, 본인은 좋은 학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배부른 소리 한다고 여긴다. 그 결과 어떤 개인도 그 공고한 카르텔에 이념적으로 반박할 자격을 상실한다. 그것이 사회경제적인 요인으로 해체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돈만 많이 벌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이념에 반기를 드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한 것이다.
오래도록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신입생 수시모집 면접을 보고 있었다. 건물 앞에는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이 시험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저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들이 대학에 가려고, 기왕이면 좋은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고 있기 때문에 질 수 없는 것일까. 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어서? 간판을 따고 좋은 인맥을 구축할 수 있어서? 살아가는 데는 좀 편할지 모른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자신의 인생은 어디에 있는 건가?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건가? 어차피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이, 나는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가 좋지 않으면 내 인생에는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고등학생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직도 그 수준에서 더 자라지 못한 건가. |